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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어느날' 천우희는 '그 날'의 다짐을 그대로 지켰다

이윤기 감독의 최신작 '어느날'서 단미소 역 맡아 열연

등록: 2017-04-19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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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포토] 미소짓는 천우희
(서울=포커스뉴스) 4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영화 '어느날'의 배우 천우희가 라운드 인터뷰를 하고 있다.2017.04.04 김유근 기자 kim123@focus.kr

 

(서울=포커스뉴스) "이렇게 '작은 영화'에 '유명하지 않은 배우'인 제가 이런 '큰 상'을 받다니요."

2014년 12월17일. 제3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자로 천우희가 호명됐다. '써니'의 본드걸로 혹은 '우아한 거짓말'의 미란이로 스쳐 지나간 낯선 얼굴. 조·단역을 오가며 10년을 버텨온 스물일곱 여배우는 이날 울고 또 울었다.

천우희는 이수진 감독의 독립영화 '한공주'로 모두를 놀라게 한 참이었다. 끔찍한 일을 겪은 17세 여고생이 사회의 폭력과 무관심 속에 스러져가는 과정을 '본 적 없는 연기'로 그려냈다. 누구도 그의 수상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지만 정작 그는 "수상소감도 준비 못 했다"며 눈물을 쏟았다.

'그 날' 천우희는 다짐했다. 좋은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의심하지 않고 나아가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힘줘 말했다. '한공주' 이후로 그는 '유명한 배우'가 됐고 '큰 영화'에 출연했으며 몇 번 더 '작지 않은 상'을 받았다. 다짐을 현실로 만들어 보였다.

그의 다짐은 또 한 번 현실이 됐다. "독립영화와 예술영화의 가능성이 조금 더 열렸으면 좋겠다"던 그는 요사이 작은 영화 '어느날'로 관객과 만나는 중이다. '곡성'의 천우희가 '어느날'로 돌아왔다는 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저는 언제나 '좋은 영화'에 열려 있어요. 작품의 규모가 출연을 결정하는 이유가 되진 않아요. 작지만 좋은 영화들을 보면 지금도 심장이 뛰는걸요. 동시에 그런 작품들이 조금 더 빛을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요. '어느날'도 큰 영화는 아니죠. 미약하나마 힘을 보탤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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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느날'의 스틸 이미지 속 천우희의 모습. <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어느날'은 '멋진하루' '남과 여' 등 로맨스 영화로 유명한 이윤기 감독의 신작이다. 남녀의 사랑과 이에 따른 감정 변화를 묘사하는 데 집중했던 이 감독이지만 '어느날'은 결을 달리한다. 각자의 상처를 가진 남녀가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로맨스 없이 담백하게 그려냈다.

작품은 상처를 보듬어가는 남녀의 성장기로 출발하지만 점차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인간의 쓰린 내면으로 나아간다. 아내를 잃고 의미 없는 삶을 이어가던 이강수(김남길 분)와 뜻밖의 사고로 영혼이 된 단미소(천우희 분)의 사이에는 사랑보다 진한 인류애가 흐른다.

"사실 처음엔 고사했어요. 첫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번엔 확 와 닿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감독님과 (김)남길 오빠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첫인상과는 다른 느낌을 담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과적으론 천우희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작은 영화에 대한 애정과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으로 중무장한 천우희지만 그에게도 '어느날'의 단미소 캐릭터를 그려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과 영혼이라는 두 모습을 모두 표현하는 것도 숙제였지만 무엇보다 '그런' 선택을 하는 미소의 입장을 헤아리기가 어려웠다"고.

"우선 결말에 대해선 고민이 컸고, 지금도 무엇이 옳다고 명확하게 말하기 어려워요. 이건 보는 사람의 몫인 것 같아요. 분명한 건 미소가 제가 연기한 캐릭터 가운데 가장 저와 닮았다는 거예요. 대사 하나, 행동 하나에 천우희가 묻어있죠. 내면의 아픔을 가졌지만 동시에 밝고 사랑스러운 아이예요. 많이 아팠고 그만큼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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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느날'의 스틸 이미지 속 천우희(왼쪽)와 김남길의 모습. <사진제공=오퍼스픽쳐스>
 

'곡성' 이후로 천우희는 또 다른 위치에 서게 됐다. 그에게 주어지는 역할의 폭도 커졌고, 대중의 기대와 평가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관대해졌다. 하지만 정작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배우 천우희는 똑같다"며 담담할 뿐이다. "현실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완벽한 연기에 대한 열망"은 자만을 허락하지 않았다.

"'믿고 보는 배우'라고 불러주시면 '내가?'라고 반문하게 돼요. 언젠간 이런 평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니에요. 이번에 시각장애인 연기를 하면서 또 느꼈어요. 꽤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좁은 잣대를 들이대고 있더라고요. '아직 멀었구나' 또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됐죠."

천우희의 필모그래피는 감정을 극한까지 끌어써야 하는 진폭이 큰 캐릭터들로 켜켜이 채워져 있다. '써니'의 상미나 '한공주'의 공주, '카트'의 미진, 그리고 '곡성'의 무명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게 배우의 특권"이라 믿는 천우희는 한 번을 쉬어가는 법이 없다.

또한 천우희에게는 천우희만의 속도가 있다. 혹자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 말하지만 "지금의 속도가 딱 좋다"는 그다. "쫓아갈 엄두를 못 냈을 수도 있고, 너무 빨라서 지쳤을지도 모르는데 감사하게도 딱 알맞게 달려왔다"며 빙긋 웃는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던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해보게 돼요. 다신 느낄 수 없을 소중한 순간을 너무 멀뚱히 보내버린 것 같아서요."

문득 천우희의 '어느날'이 궁금해져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딱 그답다. 앞으로도 천우희는 '그 날'의 다짐을 잊지 않고 살아낼 테다. 지금까지 그가 걸어왔던 것처럼. 그 속도대로.

 


 

 


장지훈 기자 jangpro@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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