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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왕실 기부금' 8천2백억원 받아 91% 되돌려준 말레이 총리

고(故) 압둘라 국왕, 2013년 나지브 총리에게 아무 조건 없이 송금
말레이 법무장관, “총리가 받은 돈은 기부금으로 완전 합법” 발표

등록: 2016-01-28 08:34  수정: 2016-01-2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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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브
(Photo by Richard Wainwright - Pool/Getty Images) 2016.01.28 ⓒ게티이미지/멀티비츠 photo@focus.kr

(서울=포커스뉴스) 아무리 같은 이슬람국가라고는 하지만 지리적으로 6000㎞ 넘게 떨어진 말레이시아의 나지브 라자크 총리(사진)에게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이 2013년 3월 말부터 4월 초 사이에 집중적으로 6억8100만 달러(약8200억 원)라는 거액을, 그것도 총리의 개인 통장에 아무 조건 없이 꽂아주었다는 것은 말레이시아 국민은 물론 세계인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나지브 총리는 사우디 왕실이 보내온, 기부금이라고 해도 좋고 비자금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이 돈 가운데 91%인 6억2000만 달러를 되돌려 주고 나머지 6100만 달러(약 730억 원)를 자기가 가진 것으로 최근 드러났다.

이런 사실이 의심스러운 송금과정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 알려지자 지난해 8월 말 연 이틀에 걸쳐 나지브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거세게 일었다. 같은 정파에 속해 있으면서도 나지브 총리의 사임을 강력하게 요구해온 마하티르 모하메드 전 총리도 집회에 합류해 당시 시위자들을 독려했다.


나지브퇴진
지난해 8월 30일 쿠알라룸푸르 시내에 운집해 나지브 총리 퇴진을 외치고 있는 시위대. (Photo by Charles Pertwee/Getty Images) 2016.01.27 송철복 국제전문위원 scottnearing@focus.kr

‘나지브 기부금 수령 스캔들’의 여진(餘震)이 만만치 않자 말레이시아 사정당국은 그간 나름대로 이 스캔들의 사실관계를 밝히기 위해 다각도로 수사를 진행해 왔다. 그러다 지난 25일 마침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모하마드 아판디 알리 말레이시아 법무장관은 나지브 총리 개인 은행계좌로 입금된 6억8100만 달러는 사우디 왕실이 보내온 전적으로 합법적인 ‘개인 기부금’이며 “그 기부가 부패와 관련하여 주어진 대가임을 보여주는 어떤 증거도 없어 만족스럽다”고 의기양양하게 밝혔다.

말레이시아 법무장관의 이 같은 발표에 대해 사우디 정부의 한 관리는 사우디 외무부와 재무부는 그러한 기부에 대해 아는 바 없으며 외국 지도자의 개인 은행 계좌에 사우디 왕실에서 기부금을 송금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밝혔다. 나지브 총리의 정적(政敵)들은 사우디에서 보내온 기부금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길길이 뛰고 있다.

컨설팅업체 JTG의 정치분석가 파하드 나제르는 WSJ에 보낸 이메일에서 “사우디 ‘왕실’이 정부기관도 아닌 외국 지도자에게 수억 달러를 ‘기부’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의심스럽다”는 견해를 밝혔다. 나제르는 워싱턴 주재 사우디 대사관에서 선임 정치 분석가로 일한 경력이 있다.

아판디 법무장관의 발표는 그간 말레이시아 야당 인사들이 제기해 온 주요 의혹을 해소하지 못했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사우디의 누가 그 돈을 기부했나 △그 돈이 사우디에서 왔다는 것을 정부가 알아내는 데 어째서 6개월 넘게 걸렸나 △되돌려주지 않고 총리가 가진 돈은 어디에 썼냐, 라고 묻고 있다. 그들은 또 왜 그 돈이 영국령 버진군도에 있는 익명 기업, 그리고 아부다비 국부펀드가 100% 소유한 스위스 민간은행을 통해 총리의 계좌로 흘러들어갔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시한다.

기부금 수령 스캔들의 장본인 나지브 총리는 법무장관의 수사결과 발표가 있은 뒤 “이 문제는 나라에 불필요한 소동이었다”면서 “문제가 철저하게 잠재워진 만큼 이제는 우리가 단결해 나아가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야당인 인민정의당 소속 국회의원이자 ‘전국 감시 및 고발(NOW)’이라는 단체의 공동 설립자인 라피지 라말은 나지브가 그토록 많은 공돈을 받았으니 ‘더없는 행운의 사나이”가 아니겠느냐면서 이어 그토록 많은 돈을 되돌려 주었다니 그는 “참으로 관대하다”고 비아냥거렸다. 라피지는 또 “이런 일은 동화 속에서나 일어난다”며 총리를 어릿광대라고 부르면서 법무장관의 수사결과 발표는 상황을 “더 우습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나지브 기부금 수령 스캔들’을 둘러싸고 WSJ나 뉴욕타임스 같은 미국 언론이 ‘2% 모자란’ 분석을 내놓은 반면 과거 말레이시아를 식민지로 지배했던 영국의 BBC 방송은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나지브에게 건너간 기부금은 2013년 5월 5일 치러진 말레이 총선에서 나지브가 이끄는 집권연합 국민전선(BN)의 승리를 도울 목적으로 사우디 왕가가 선거 직전 몇 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송금한 선거운동용 실탄이라고 용처(用處)를 딱 못 박아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BN은 말레이시아 독립 이래 계속 집권해 오고 있는 이 나라의 지배적인 정파다. 


푸트라자야
한국의 세종시에 해당하는 말레이시아의 행정수도 푸트라자야. 수도 콸라룸푸르에서 남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건설됐다.(Photo by Robertus Pudyanto/Getty Images) 2016.01.28 ⓒ게티이미지/멀티비츠 photo@focus.kr

익명을 요구한 이 사우디 소식통이 BBC에 밝힌 바에 따르면, 그 송금은 고(故) 압둘라 국왕이 승인했으며 왕의 개인 금고와 국가 기금에서 충당됐다.

이 소식통이 설명하는 기부의 목적은 단순하다. 나지브 총리와 BN이 총선에서 이기도록 돕는 것이다. 그 돈으로 국제적 전문성이 있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팀을 고용해 가동하고, BN의 최대 정치기반인 사라와크 주에서의 선거운동에 집중하며, 선거운동 과정에서 사회적 프로그램들에 자금을 팍팍 지원하라는 의미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비(非) 아랍국가의 총선에 사우디 왕실이 왜 그토록 신경을 썼는가? 그것은 사우디가 테러조직으로 간주하는 무슬림형제단의 세력이 말레이에서도 커지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8000억 원이라는 거액을 개인적으로 기부한다는 것은 과하지 않은가? 이에 대해 BBC의 그 소식통은 요르단, 모로코, 이집트, 수단도 사우디 왕실에서 수억 달러씩 받은 적이 있다며 말레이시아만 특별대우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말레이시아에 대한 기부와 관련해 유별난 것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것은 사우디가 수많은 국가들을 상대하는 방법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BBC에 따르면, 무슬림형제단이 2012년 6월 배출한 모하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을 이집트 군부가 2013년 7월 축출할 때 사우디는 얼씨구나 하고 이집트 군사정부에 수십억 달러의 원조와 차관을 제공했다.

요르단은 사우디에게서 개발 지원금을 10억 달러 넘게 받았고, 수단 중앙은행에는 사우디 자금이 10억 달러 이상 예치됐으며, 나일강을 따라 댐을 건설하는 수단의 건설 프로젝트에 사우디는 돈을 댄다는 약정을 맺었다. 그런가 하면 모로코는 근년에 석유, 자금, 투자, 일자리를 사우디로부터 제공받았다.

그렇더라도 기부금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굳이 비밀 송금경로가 동원돼야 했는지, 왜 나지브 총리가 받은 돈 가운데 91%를 굳이 되돌려 주었는지, 남은 돈 6100만 달러를 과연 어디에 썼는지는 여전히 석명(釋明)되지 않는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려면 돈을 보낸 사우디 측과 돈을 받은 말레이 측이 송금기록을 전부 까발려야 하는데 이런 일은 영원히 가능할 것 같지 않다.

말레이시아 내 정적들에 의해 ‘행운의 사나이’로 비꼼을 받는 나지브 총리(62)는, 말레이시아가 1957년 영국에서 독립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맡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말레이시아 제2대 총리를 지낸 압둘 라자크의 장남이다. 그런가 하면 나지브의 삼촌 후세인 온은 말레이시아의 제3대 총리를 지냈다.

나지브는 2013년 총선에서 BN을 이끌었다. BN은 가까스로 승리해 의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지만 그것은 50여 년 만에 최악의 신승(辛勝)이었다.

이쯤 되면 사우디가 우군 BN을 지원하려 통근 기부를 했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그렇더라도 전모(全貌)는 영영 오리무중일 수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나지브가 개재된 불투명한 국제적 송금 관행 등을 빌미로 그 배후를 열심히 캐고 있다고 하니 엉뚱하게 미국 쪽에서 속 시원한 설명이 나올지 모른다.


송철복 국제전문위원 scottnearing@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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